벤처기업의 기회 혹은 한탕주의
주변에서 왜 회사를 그만뒀냐고 물으면 그냥 회사가 딴데로 넘어가서 그렇다고 대답하곤 한다. 기존 사장이 190억에 회사를 팔았다고 얘기하면 다들 일단은 부러움의 탄성을 지르고, 그 다음 따라오는 질문은 "너는 뭐 챙긴거 없냐" 이다. 사장 혼자 먹고 튀었다 라고 얘기하면 그 부정적인 뉘앙스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하나는 벤처기업 만들어서 성공한 케이스인데 뭘 그러냐는 두둔이고, 다른 하나는 니 몫은 스스로 알아서 잘 챙겨놨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핀잔이다. 사장을 욕하는 사람이 없는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게 일반적인 벤처의 성공모델이고, 이런 한탕주의야말로 벤처의 본질이라 생각하면서 벤처를 꿈꾸는 사람들이 IT업계에는 널려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무관하게 이 정도의 성공은 대단히 이루기 어려운 것이고, 어려운 만큼 선망의 대상이 된다.

사장은 한탕이라 표현하기에는 다소 긴 시간. 약 7년 정도를 노력했다. 회사를 창업하고, 전략을 세우고, 밖으로는 영업의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한편 안으로는 직원들의 불만과 사장 자리를 노리는 이사진들과 싸워야했다. 많은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그렇듯이 그도 사람을 포용하고 자기 사람을 만드는데는 서툴러서 그런 싸움을 홀로히 힘겹게 했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장은 결벽증에 가까우리만치 정직한 경영자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쨌건 회사는 성공적으로 성장했고, 6년만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정직한 자기 자신을 버림으로써 큰 돈을 거머쥘 수 있었다.

상장 직후부터 여러 큰 손들로부터 매수 제의가 들어와서 수십여건의 협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중에 190억을 제안한 한독무역 박회장에게 지분을 넘겼다. 모르는체하고 말한다면 개인 주식의 70% 정도를 개인적으로 팔고, 새로운 대주주에게 경영권만 넘겨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회사에 우회상장의 기회를 준 것이고, 이를 위해 그가 7년간 일궈왔던 회사와 80여명의 직원을 판 것이다.

회사를 파는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모바일 시장은 어려워지고 있었고, 80명이 넘는 직원은 너무 많았다. 정리해고의 준비는 거의 상장 직후부터 시작됐다. 상장 후 6개월정도 지난 시점에 그는 20%가 넘는 대대적인 규모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정리해고 후에 자진해서 그만둔 10% 정도를 미리 감안했다면 30%가 넘는 규모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때까지 회사는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지만(창업 직후 첫해년도를 빼면), 실적이 안좋아지고 있는게 눈에 보였기때문에 경영상 어쩔수 없었다고 표현했다. 표면적으로는 해고가 아니라 단지 대기발령을 내고, 스스로 나가게 하는 방식이었지만 상당한 무리수였다. 대기발령을 받은 사람중 반은 인수인계고 뭐고 없이 3일만에 나가버렸고, 정리해고에 반발하는 한두명까지 2주만에 모두 나갔기에 망정이지 그 30%의 사람들이 사장에 반대하고 저항했다면 매각도 못한체 급속히 회사를 망가뜨렸을 것이다. 무리수를 둔 이유는 분명 지분매각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탕주의라는 표현은 좀더 적절해보인다.

정리해고보다 더 나쁜 것은 회사를 처분한 일일 것이다. 둘다 동일한 조치지만 후자가 더 규모가 크니까 말이다. 엑스씨이가 다른 업종의 회사로 바뀌더라도 남은 직원들은 우르르 몰려나가서 딴 회사를 차리면 되지 않겠냐는건 완전히 의미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정리해고 당한 20여명의 사람들에게 모여서 회사 하나 만들라고 하는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얘기다. 자신은 7년간 고생한 보상으로 크게 한몫 챙긴 후에 같이 고생한 직원들에게는 퇴직을 선물한 사장이 별로 나쁘지 않다고 하는건 문제가 있다. 사장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았다. 그의 지분중 일부만 주식시장에 팔아도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가 지쳤다면 직원들에게 기회를 줄 수도 (매각 후에 그렇게 했듯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지금같이 큰 돈을 챙기긴 어려울테고, 회사 일로도 계속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간편하게 직원을, 아니 회사를 파는 길을 택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또 한가지 문제는 사장이 회사의 주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폐업을 할지 회사를 팔아넘길지 하는걸 결정할 수 있는 구조의 문제다. 사장은 지분 30%정도를 가진 대주주였지만, 만일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 한다면 그도 주인들중 한명일 뿐이지 혼자서 주인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 대주주 혹은 사장은 지분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회사의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있고, 회사를 개인 재산처럼 처리할 수 있는 다양한 편법들을 가지고 있다. 분산되어 있는 나머지 70%의 주주들은 회사 일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회사 일을 알 수도 없다. 회사를 다른 업종의 회사에 팔아넘기고 이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고 한들, 다른 주주들이 이를 제지할 방법도 의사도 없다. 불만인 주주는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엑스씨이의 지분을 사서 새로 사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떻게 이 회사를 개인재산처럼 주무르고 있는지는 굳이 쓰지 않겠다.

벤처에 뛰어드는 많은 기업가들이 시작시점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그의 동료 및 직원들과 함께 멋진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혹은 얼마든지 나쁜놈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성공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던지 성공하긴 어렵고, 성공 이후에도 인간성을 유지하긴 더 어렵다. 벤처의 본질이 한탕주의가 아니던가.
by conanoc | 2008/02/26 21:14 | Biz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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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준형애비 at 2008/02/27 18:06
뭐..저도 욕하고 싶지만.. 그걸 다 알고 있었고...
말씀하신데로 벤처의 본질은 한탕주의 아닌가요?

iCon을 읽어도 두 스티브중에서 돈을 제대로 챙긴건 잡스죠..
워즈니악도 일부 챙겼지만.... 개발자중에도 워즈니악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건 뭐...

여튼 김사장님은 배부르시겠죠. 190억.. 190억.... 너무 보고 싶어요..
Commented at 2008/02/27 20: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준형애비 at 2008/02/28 08:29
쩝.. 그냥 넘어갈 수 가 없어서..
'결벽증에 가까운 정직했다' 는건 아닌것 같은데요.. 어떤 사건에 기조해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미루어볼때 (전 그전부터 그리 생각했지만..)
크게 회사를 팔기위해 돈 쓰는것을 막은것 아닐까요? 본인은 돈을 펑펑쓰지만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돈 쓰는것을 깨끗하게 밝혀야 하는거죠..
한마디로 내돈 남이 쓰는게 열받는게 아닐까 싶은데요...뭐 그리고 그게 사장의 특권이쟎아요? 부자들의 기본 철학이고...

그리고 190억에 7년 한탕이면 짧은 기간인것 같은데요. 요즘 수십억대 사기도 5년이상 준비 한다네요

결국 욕만 할 수도, 칭찬할 수도 없는것 같습니다. 같이 일했었다는것에 대해 실망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그분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것도 아니니... 배신감은 느끼더라도...
사장은 게임을 잘한거죠.. 버려야 할 때 패를 과감히 버리고, 배팅할때 패를 꼭 쥐고 배팅하고... 물론 운이 많이 작용했고.

남겨졌다고 또는 버려졌다고 배신감이나 좌절 할 필요는 없는것 같습니다. 들고 떠난사람은 떠난거고. 남은 사람들은 또 각자의 삶을 사는거겠죠.
대신 우리 입에 회자 되지 않습니까...최소한 같이 거쳐간 약 200명의 입에.. 평생토록....
그분도 다 아실꺼에요. 물론 콧방귀도 안뀔테지만....
Commented by conanoc at 2008/02/29 18:43
오랜만에 뵙네요. 희망,양정수님. kandroid 멋지네요.

위 글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배신감이 큰건 아니고, 정리를 해보는 차원에서 적어본겁니다. 부끄러워할 사람은 부끄러워하고, 욕할 사람은 욕해야 할것 같은데, 너무 무신경하게 넘어가는것 같습니다. 적어도 XCE를 거쳐간 사람 중에서 나중에 김주혁 사장과 같은 사람은 안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Commented by 딴딴맨 at 2009/04/22 11:42
참 가슴아프게 님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저역시 네오웨이브란 회사에서 동일한 경험을 겪고 회사를 그만둔지 언 2년이 되었습니다. 전임 대표이사 최XX가 사채업자에게 알량한 지분을 팔고 쥐도새도 모르게 회사를 매각해서 어렵게 만들었죠. 벤처에서 일하는 즐거움과 성취감으로 생활한 저에게 큰 아픔이었습니다. 님의 글과 심정에 십분 공감이 가기에 글을 남깁니다. 한탕주의가 없는 세상이 되도록 후세들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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